선의의 정배가족에게 미안하다, 그러나 이런 행사에는 참석할 수 없다.

지난 4월 18일, 정배학부모 한마당의 시작에서 사회자가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한다고 했을 때, 재미있게 하기 위한 퍼포먼스를 준비하는 줄 알았다.
표현은 그렇게 했지만, 전혀 엉뚱하고 재미있는 노래를 틀어 한바탕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줄것이라고 믿었다. 

헌데, 유감스럽게도 나의 상상은 그냥 상상이었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시작할 때부터 놀라서 왜 이렇게 진행하느냐고 항의하던 남편은 ‘애국가 제창’,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국가행사용 식순의 진행에 급기야 행사 보이콧을 결정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거기까지, 참, 개념 없다며 푸념으로 넘기려던 나의 온건함(남편에 비해서...ㅡ.ㅡ.....)도 국민체조를 하겠다는 데 이르러서는 ‘아, 나도 자리를 뜨는 것이 좋겠다’는 결정을 하게 했다.

우리 아이에게는 좀 미안하다는 생각을 했다.
조편성 때문에 불평을 터뜨렸지만, 곧이어 친구들과 정배가족들과 함께하는 놀이에 마음이 다가가고 있는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와 버렸다. 우리 가족의 선택이, 남아있는 다른 선의의 정배가족에게 미안한 선택이었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앞으로도
정배가족 행사가 이런 식순으로 진행된다면, 우리는 참석하지 않을 생각이다.

이런 진행이 단순하게 사회자 혼자만의 판단이었는지,
아니면 이 행사를 주관한 집행부의 의견이었는지도 알고 싶다.
이 행사 집행에 관계가 있는 관계자 누구든 나의 이 질문에 답변을 해주시길 부탁한다.



6시면 온나라에 울려퍼지던 국기 하강식, 강요된 국가에 대한 존경을 기억하는가?

보다 민주화된 사회를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아이들이 개인의 개성과 선택을 살려 보다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데 정배가족 모두가 동의할 것이라고 믿는다.
이런 사회를 만드는데, 강제되어 획일적으로 요구하는 국가에 대한 존경과 애국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저녁 6시면 나라 전체에 울려 퍼지던 국기 하강식에 의무적으로 멈춰 존경을 표해야 하는 시대를 몇 십년을 살아왔고, 이런 강제된 존경심의 표현이 옳지 않으니 없애야 한다는 데 합의해 없애기까지 오랜 기다림과 논쟁을 거쳐야 했다.

극장에서 영화 한편을 볼 때도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사회에서 몇 십 년을 살다보니, 지금 그런 강제가 사라지도록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과 노력이 있었는지를 잊었을 수도 있다. 

그런 희생을 딛고 누리는 현재의 이런 환경이 왜 소중한 지를 생각하지 못한다면, 희생을 무릎 쓰며 이런 오늘을 만들기 위해 희생당한 우리의 선배들에게 죄송스럽고, 누가된다.

국가는 강제된 존경을 받을 대상이 아니라,
자유로운 생각을 가진 국민들이 그러한 국민을 위해 보다 나은 행정과 법치를 할 수 있도록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하는 대상이다.

한사람 한사람의 자율적인 의사가 모여, 봉사와 헌신으로, 그리고 사랑으로 자랑스럽게 만들어야 할 대상이지, 국가로부터 국가에 대한 존경을 강요당하는 국민으로 살고 싶지 않은 것이 너무 당연한 일 아닌가.



폭력을 합법적으로 인정받는 유일한 초월적 존재 ‘국가권력’

폭력을 합법적으로 인정받으며 행사하는 초월적 존재가 현대 사회에서는 유일하게 국가권력이다. 이 국가권력은 국민이 뽑은 몇몇 권력자들 손에 쥐어진다. 

끊임없이 감시하고, 견제한다 하더라도, 권력자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이용하거나, 이것이 여의치 않으면 입맛에 맞도록 제도와 법을 바꾸면서까지 다수의 이익과 자유를 통제하려 든다. 소수의 이익을 위해 다수를 희생하려는 도모를 쉬지 않고 이어간다.

이러한 소수 권력자들의 요구에 이바지하는 것이 바로 맹목적인 국가와 민족을 향한 존경이고, 희생이다. 이를 형식으로 보여주는 것이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등을 시도 때도 없이 강요하는 것이다.

우리의 국기, 애국가 모두 소중하다. 우리가 가꿔갈 자랑스런 국가를 상징하는 상징물이다.
하지만, 이를 위한 존경과 의례를 강제하는 것은 옳은 민주사회의 방식이 아니다.
사랑과 존경은 마음에서 우러나와 스스로 하도록 두어야 한다. 

형식 하나, 단어 하나가 정의하고 품고 있는 뜻과 가치가 언뜻 별거 아닐 것 같다고 소홀해서는 안된다. 
민주시민으로서의 권리, 자유로운 사회에서 살 수 있는 환경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자신의 행동 하나, 사용하는 언어 하나가 어떤 사회적, 역사적 의미를 가지는지 더 깊이 알아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

정배학부모 한마당에서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5학년 백규혁 엄마 씀.